감독과의 수다 한 잔


인터뷰 <시인의 말실수> 김주안 감독

하루 동안 ‘영신’은 이곳저곳에 놓인 자신의 시집을 찾아나선다. 고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영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단락처럼 이어지고, 영신이 마주한 감정들은 단어가 되어 쌓인다. 이미 전해진 글, 이미 닿은 말을 천천히 되새기는 영화를 보며 많은 시가 떠올랐다. 영화 ⟨시인의 말실수⟩(2017)를 만든 김주안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듣고 싶다.

⟨시인의 말실수⟩를 연출한 김주안이다. 현재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어렸을 때 글쓰는 것 을 좋아하고, 글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영화 보는 것 또한 좋아하다 보니 글을 이미지화 시키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적합한 매체가 영화인 것 같아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Q. ⟨시인의 말실수⟩는 어떤 영화인가?

말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시인은 말과 글의 간격이 좁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말이나 글에 담은 마음을 붙들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동시  보편적인 사랑이나 미련, 그 속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감정들을 다뤄보고 싶었다.



Q.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최초의 발상은 “시인이 말실수를 한다”는 문장이었다. 문득 떠오른 문장에 따라온 이미지가 있었고, 살을 붙여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시적인 영화를 찍고 싶었다. 아직 영화가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시적인 것과 영화적인 것을 함께 고민하다 보니 어렵기도 했다.



Q. 시인은 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일텐데, ‘시인의 말실수’라는 제목 자체가 극적인 느 낌을 준다. 영제는 ‘Hearty Silence’, 즉 ‘다정한 침묵’이다.

‘다정한 침묵’은 영화의 주인공인 영신이 헤어진 연인인 태수에게 썼던 짧은 시의 제목이다. 시집의 표제기도 하다. 영신과 태수에게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다정하게 느껴지는, 별 말 안 해도 의지가 되는 순간들. 그런 감정에서 비롯된 짤막한 시가 ‘다정한 침묵’이다. 영신에겐 그 감정이 중요한 동력이었을 것이다.



Q. 부제 같은 시구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직접 써두었던 것들이다. 영신이 태수에게 쓴 시를 고치려고 하면서 떠올리는 말들이다. 말에 마음이 있는 영신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새로운 마음들을 얻어가길 바랐다. 이 영화를 볼 때는 말과 마음, 그리고 글을 하나의 의미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Q. 영신은 ‘다정한 침묵’이란 시를 고치고자 한다. 그런데 시 속의 단어를 지우지만 새로운 단어를 써넣지는 않는다. 영신에겐 새로이 쓰고픈 말이 있었을까?

고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떤 말로 고쳐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오히려 그 시를 그대로 두 고 새로운 시를 쓴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영신에겐 이 하루가 새로운 시어를 모아 가는 과정이었을 수 있다.



Q. 영화에 ⟪다정한 침묵⟫ 시집이 등장한다. 실제로 출판되는 시집과 흡사한 모습이다. 제작기가 궁금하다.

직접 만들었다. 시집 표지의 일러스트는 안제헌 작가가 그려주었고, 전체적인 디자인은 출판 사에 연락해서 모방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시집의 규격과 형식을 출판사가 일러준 기준에 맞추어 제작했다. 훑어보는 장면이 나오니까 내용도 다 채웠다. 중요한 부분만 지정해서 넣어놓고 나머지는 미술감독이 유명한 시를 골라 넣었다. 마지막 장에는 나에게 편지를 써놨더라. 그간 고생시킨 것에 대한 애정 어린 욕이었다.(웃음)



Q. 영화에 영향을 준 시나 작품도 있었는지.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러 시집을 읽어봤다. 이야기가 잘 안 풀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마다 시집을 펼쳐보았다. 한 편의 시보다는 수많은 시에서 조각조각 단어와 정서를 얻어온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시⟩(2010)라는 영화도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많이 보았다. 나의 영화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시를 주제로 하는 영화다보니 많이 배워보려고 했다.



Q. 문학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창작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영화를 만드는 젊은 창작자로서 어느 정도 영신에게 이입하거나 스스로를 반영하는 면도 있었을 것 같다.

원래 영신에게 나를 반영한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시나리오 초창기엔 그런 성격이 많이 드러났다. 주변의 조언과 질타를 들으며 그 부분을 어느 정도 고쳐나갔다. 마치 ⟨시인의 말실수⟩ 속 영신이 선배에게 “시가 아니라 편지 같아”라는 평을 듣듯이.



Q. 확실히 창작자의 고뇌를 다루기보다는 태수를 찾아나서는 영신의 이야기에 가깝다. 영신이 시 집을 찾아다니는 행위도 결국 태수를 찾는 행위다. 태수라는 인물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 지 궁금하다.

영화 안에서 태수라는 인물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역할이다. 영신이라는 캐릭터가 움직이고 있고, 태수는 영신의 기억이나 꿈속에서만 나오는 장치 같은 느낌도 있다. 그러나 영신에게 있어 태수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태수는 영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또 영신의 옆에 있어 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영신이 ‘다정한 침묵’이라는 시를 쓰게 만든 순간들이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영화에 인물들의 전사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대본 리딩할 때부터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Q.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영신은 서점주인과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태수에 관해 묻기 위해 다시 서점을 찾아갈 때 서점주인 앞에서 영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시를 좋아해주는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뒤, 영신은 무언가 깨닫게 된다. “어차피 제가 쓴 거잖아요.”라는 말을 뱉은 뒤 ‘이미 내 손으로 직접 쓴 건데 이제 와 뭘 더 고치려 하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동시에 따라왔을 것이다.



Q. 문학적인 영화를 만들어나가면서 어떤 부분을 더 신경썼는지 알고 싶다.

연출할 때 정서적인 부분에서 세밀한, 사소한 부분들을 넣어보려고 했다. 출판사 직원이 영신한테 인사를 하는 순간이라던가, 영신이 지하철역에서 수화를 하면서 싸우는 커플을 마주하는 순간처럼.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며 돌아다니다가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을 영신이 마주하길 바랐다. 이야기의 큰 틀에서는 연결고리가 없을 수도 있지만, 영화 안에서 영 신이라는 캐릭터의 감정이나 정서를 만들어내는 세밀한 순간들이 있기를 바랐다. 그게 시적이거나 문학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Q. 음악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시각적, 언어적 요소로 영화의 분위기를 만든다. 로케이션도 인상적이다.

음악은 엔딩을 제하고는 들어가지 않았다. 확실히 음악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느껴지는 부분 에만 넣었다. 영화 속 영신의 집은 사실 나의 본가다. 거실에 침대를 두고 원룸처럼 보이게 꾸몄다. 벽이 나무로 되어있어서 좋은 분위기를 내는 것 같다.



Q. 대구단편영화제에 가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상영하게 되어 기쁘다.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집을 빌려준 부모님도 고생했는데 학생들끼리 영화를 찍으면 돈을 주기도 어렵다. 품앗이로 작업했으니 뭐라도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 내가 가장 크게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Q. 첫 작품으로 기록이 될 텐데, 감독님에게 이 영화는 어떤 작품인지 묻고 싶다.

처음으로 내 개인적인 차원을 벗어난 영화다. 이전에도 짧은 영화들을 찍은 적은 있지만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지 않았다. 영화가 만들어진 후 내 손을 떠나는 과정도 있어야 하는데 그래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조금 과한 표현이지만, 이 작품이 처음으로 작게나마 영화적 완성을 이 뤄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또 영화를 하면서도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다음 영화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Q. 향후 영화작업 계획이 있는지.

구상 중인 것은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모티프를 얻어 운명과 춤 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휴학 중이고, 여러 생각도 많아서 잠시간 쿠바 여행을 가려고 한다. 다녀오고 나서 졸업작품을 준비하지 않을까. 내 성격상 잘하지 못하는 것도 영화작업을 하며 마주해야 한다. 작업이 내 성격과 상반되는 일일 때도 있다. 그런 괴로움이 있어도, 가능하다면 계속하고 싶다.7



Q.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대구단편영화제에 상영하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이번 계기를 통해서 다음에 또 다른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의미가 크다.




취재/글 전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