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수다 한 잔


인터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황영 감독



Q.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원래는 미술학도였다. 그때도 영화를 많이 보긴 했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여자 친구가 영화를 하는 사람이어서 스탭으로 일을 도와주게 됐고, 그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영상미디어센터에서 하는 워크숍에 참여해 수업을 들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감독들 8명이 함께 모여 시나리오 발전 연구회라는 모임을 조직해 첫 단편을 만들었다. 이전부터 미술작업을 하면서 가끔 영상작업을 한 적이 있긴 했었지만, 결국은 여자 친구가 지금의 결과를 있게 했다.


Q.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은 굉장히 독특한 장르영화다. 사실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단편영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닌데,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A. 영화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곳에서 찍었다. 그곳이 60, 70년대에 삼성 제일모직의 기숙사로 쓰였던 곳인데, 지금은 그곳의 외관을 그대로 남겨놓고 내부만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 바깥을 보면 옛날 그 시절의 느낌이 그대로 난다. 이번 영화 작업을 의뢰한 곳이 바로 그 창조경제혁신센터였다. 바깥 외관이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게 거기서 내건 조건이었는데, 분위기가 마치 좀비나 뱀파이어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거기를 딱 보는데 왠지 지금까지도 그곳에 사는 뱀파이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장에서 떠오른 그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선 이번 영화의 제작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Q. 그 외에 주인공들을 뱀파이어로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

A. 만약 옛날부터 살아온 뱀파이어가 있다면, 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능력은 출중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 꿈을 숨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이미지. 비유적인 모습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이미지가 뱀파이어라는 특이한 존재와 부합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60, 70년대의 제일모직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그냥 상상한 것도 있다.


Q. 사용된 음악들이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 형성에 일조한 것 같다.

A. 엉뚱하면서도 공포스러운 느낌을 깔아주는 음악이 필요했는데, 사실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게 내 친구였다. 그 친구가 만든 곡 외에 소소한 BGM들은 구글에 있는 무료 음악을 사용했고. 음악을 담당한 그 친구는 나중에 직접 노래까지 해서 영화 속의 OST를 만들기도 했다.


Q.정훈희의 <안개>, 한영애의 <누구 없소>가 영화에 삽입되었는데, 삽입곡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줄 수 있는가.

A. 정훈희의 <안개>는 김승옥의 소설을 영화화한 <무진기행> 이라는 영화에 먼저 쓰였던 노래였다. 내 영화와 어울리는 음악을 찾다가 이 노래가 거기 쓰였다는 걸 우연히 알고 됐고, 초반 분위기를 깔아주는 곡으로 괜찮게 생각되어 쓰게 됐다. <누구 없소> 는 사실 음악을 담당했던 그 친구와 내가 같은 계명대학교 동기인데, 그 친구가 학교 가요제에 나가서 부른 노래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대상을 탔다.(웃음) 그래서 더 깊이 기억하고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Q. 자칫 무겁고 음침해질 수 있었던 영화에 활력을 주는 건 호준이라는 캐릭터였다. 상대적으로 말수도 적고 음침한 주인공 선희에 비해 밝고 수다스러운 캐릭터인데, 비교되는 두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인가.

A. 영화를 좀 더 길게 찍었다면 호준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었다. 영화 속의 호준은 선희의 친오빠인데, 사실 영화 속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이다. (웃음) 자기 정체가 탄로 나면 공무원이 못될까봐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못하는 인물인데, 동생이 잡아놓은 먹잇감을 막 노리기도 하고. 얍삽하면서도 뭔가 사랑스러운 면이 있는 캐릭터다. 선희도 말수는 적지만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였고. 각박한 삶을 사는 남매지만 그 와중에도 그럭저럭 엉뚱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Q.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라는 제목은 뱀파이어의 꿈을 꾸지만, 사실은 화장실 청소부에 불과한 선희의 현실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A. 조금은 반어법적인 부분도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들의 삶을 오히려 누가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목을 지었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들 개개인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Q. 이번 작품의 창작에 영감을 줬던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원래 미술 작업을 할 때도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따라 작업을 한다. 그림도 많이 그리고 사진도 많이 찍는데, 보통 순간순간 지나가다가 보이는 공간들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찾는 편이다. 이 공간에서는 이런 사건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공간에는 이런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창조혁신센터 건물을 보면서 뱀파이어 생각을 한 것도, 그런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단편 소설을 보면서도 그러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이 장면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까, 이런 느낌으로 가면 어떨까.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틀어보는 편이고, 상상도 많이 하는 편이다. 평소의 그런 과정이 결국 작품을 만드는 데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Q. 감독님 자신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A. 사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그렇게 무겁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놀이로써 생각하고 싶은 마음인데, 영화를 만들 때 굉장히 깊이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 되면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들에게도 힘든 부분이 있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쓰는 게 좋겠다 싶어 가볍게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진중하게 작업하는 분들과는 약간의 갭이 있긴 한데, 내 창작의 원천은 아무래도 순간적인 아이디어나 재밌는 발상들에서 오기 때문에, 그냥 하나의 장르로 봐 주신다면 좋을 것 같다. 거기다 물론 놀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작업할 때는 정말 집중해서 한다. 가볍게 접근하지만,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A. 기회가 된다면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덴 항상 돈이 필요하니까, 마음대로 하기는 힘들겠지만 좋은 기획을 하고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 내년이나 내후년에,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 지원사업에 시나리오를 내 볼 생각이다. 공모전 같은 것도 계속 생각하고 있긴 한데, 그런 건 또 먼저 만들어놔야 돈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체제니까. 금전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라도 작업하고 싶다.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해서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이 있는데, 시나리오만 잘 통과된다면 아직도 찍고 싶은 게 많다.


글/취재 최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