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수다 한 잔


인터뷰 <불온한 검은 피> 박준석 감독

⟨불온한 검은 피⟩(2018)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한쪽 면에 지금껏 영화에서 볼 수 없던 흰색 스 크래치와 흰색 마스킹들로 채워진 프레임들, 새로운 실험이 존재한다. 동시에 과거 필름의 재현과 향수가 공존하는, 과거에 대한 애착이 존재한다. 마치 ⟨불온한 검은 피⟩가 가진 두 개의 얼굴은 과거와 미래가 마주하는 듯하다.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이 작품을 올린 박준석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간단하게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그냥 영화가 좋아서, 2010년부터 영화를 찍고 있는 사람이다. (웃음)

중학생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었고,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irc과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영화를 특히 좋아 했다. 이후 우연찮게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의 ⟨아귀레, 신의 분노 Aguirre: The Wraith of God⟩(1972)라는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 이 영화는 본인에게 새로운 영역의 세계를 제공했고, 이 영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Q. ⟨불온한 검은 피⟩는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

⟨불온한 검은 피⟩는 본인이 제작한 9번째 영화이다. 최근 제작한 영화들은 35mm 필름으로 제작했는데, ⟨불온한 검은 피⟩를 제작하기 전에 ⟨질식⟩(2015)과 ⟨악의 손길⟩(2017)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들은 필름에 대한 애착이자 헌사이고, ⟨불온한 검은 피⟩는 이에 대한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Q.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되는 2개의 실험영화중 하나인데, 감회가 궁금하다.

일단 대구단편영화제는 타 영화제들 보다 사적인 의미가 큰 영화제이다. 영화를 찍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본인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던 곳이 대구단편영화제였고, 이렇게 다시 대구에 찾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하지만 이번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실험영화가 2편이라는 점은 사실 좀 속상하다. ⟨불온한 검은 피⟩가 상영하지 않더라도, 더 많은 실험영화가 상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한 이번 대구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또 다른 실험영화인 장은주 감독의 ⟨사냥의 밤⟩(2017)에 대한 기대가 크다.



Q. ⟨불온한 검은 피⟩를 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다.

⟨불온한 검은 피⟩는 35mm 필름을 통해 제작한 세 번째 작품이고, 이를 마지막으로 35mm 필름을 통해 작업하는 것을 마무리 짓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 필름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들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불온한 검은피⟩를 제작할 때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는 작업 방식을 고수했다. ‘파운드 푸티지’는 실재하는 필름에 물리적 혹은 화학적으로 변화를 주는 방법인데, 이를 통해 디지털이 구현할 수 없는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Q. ⟨불온한 검은 피⟩는 ⟨샤크마 Shakma⟩(1990)의 필름을 통해 제작하셨는데, 이 둘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관계라고 할 것 까지는 없다. ⟨질식⟩은 일본 성인영화의 클립을 통해 제작했고, ⟨악의 손길⟩은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3 Best of the Best 3: No Turning Back⟩(1995)의 클립을 통해 제작했다. 세 번째 영화는 피가 짙은 영화의 클립을 통해 제작하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샤크마⟩를 찾게 되었다.



Q. 즉 ⟨불온한 검은 피⟩는 ⟨샤크마⟩의 필름을 파운드 푸티지 작업을 하여 제작했다는 건데, 어떠한 점에 중점을 두었는가?

괴물 혹은 죽어있는 시체들을 스크래치를 낸다거나, 공간들을 지우는 과정에서 화학약품을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지워지지 말아야할 부분에 테이프를 붙였고, 테이프를 붙인 부분은 화면의 왜곡을 막을 수 있었다. 즉 왜곡할 부분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프레임마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온한 검은 피⟩를 마무리한 후, 후유증으로 물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웃음)



Q. 허연 시인의 ⟨불온한 검은 피⟩라는 시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영화와 연관이 있는가?

일단 허연 시인의 ⟪불온한 검은 피⟫라는 시집을 좋아해서 그 제목을 따왔다. 또한 본인이 제작한 대부분의 영화들의 제목을 지을 때, 개인적으로 감명받은 것들로부터 제목을 따왔었다. 이전에 제작했던 ⟨저주의 몫⟩(2013)의 경우에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저주의 몫 La Part Maudite⟫이라는 책으로부터, ⟨나를 위한 노래⟩(2012)는 스탠 브래키지Stan Brakhage 감독의 ⟨나를 위한 노래 Self Song⟩(1997)로부터, ⟨낯선 물체⟩(2011)는 아핏차퐁Apichatpong Weerasethakul 감독의 데뷔작인 ⟨정오의 낯선 물체 Mysterious Object at Noon⟩(2000)로부터 따왔다. 나름대로 영화의 제목을 짓는 과정은 혼자만의 즐거움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불온한 검은 피⟩의 경우에는 제목이 너무 심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웃음)



Q. ⟨불온한 검은 피⟩의 제작을 진행하면서 가장 영감을 많이 받은 작품 혹은 작가가 있다면?

나오미 우만Naomi Uman 감독의 ⟨리무브드 Removed⟩(1999)라는 영화를 우연찮게 접하면서, ⟨불온한 검은 피⟩의 컨셉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본 후에 ⟨불온한 검은 피⟩에서 사물 혹은 공 간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Q. 제작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부분의 작업은 혼자 진행하며, ⟨저주의 몫⟩을 제작할 때는 혼자 촬영하면서 연기를 한 적도 있다. 실험영화는 유독 혼자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험영화를 계속 찍어오면서 이제는 혼자 작업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계속 혼자 작업을 하다 보니 극영화를 제작하면서 많은 스태프들과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웃음)



Q. 감독님이 생각하는 ‘실험영화’라는 정의에 대해 궁금하다.

사실 이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일반 극영화와 내러티브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영화와 실험영화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호함이 존재하는 과정에서 모든 영화들이 어느 정도 실험적인 요소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이후의  작품 계획이 궁금하다.

차기작은 장편 극영화를 계획하고 있다. 뱀파이어에 관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최근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7월 말에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 신청하려고 준비 중이다.



Q.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일단 이번 대구단편영화에서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또한 많은 관객들이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고, 실험영화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취재/글 최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