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리뷰단


제18회 경쟁부문 <시험 후> 리뷰


변하지 않는 것, 변하는 것, 변할 수밖에 없는 것


오래된 친구는 서로 닮게 된다. 그것은 함께한 추억과, 담고 있는 시간의 깊이가 따로 시작한 두 개의 삶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과 오래 친해지면, 나와 닮아가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그 안에서 점점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닮아가는 건 주변 풍경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함께 하는 과정에서 같은 것을 보고, 느끼며, 공유하는 과정이다. 친해지면서 닮아가고, 닮았기 때문에 친해진다.

채은과 민정은 여고시절부터 친구였고, 직장인이 된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닮아있다. 풍경 역시 크게 바뀐 건 없다. 고등학교 때 몰래 가방에 숨겨놓고 마시던 캔맥주는 이제는 식탁 위에, 상표 하나 안 바뀐 채로 당당하게 놓여있다. 민정은 학생 때 시험을 마치면 슬리퍼를 그대로 신고 나오곤 했고, 오늘 직장을 그만둔 채은은 거기에 슬리퍼를 놓고 나온다. 옛날에 둘이 함께 봤던 영화들은, 지금도 같이 보면 여전히 울컥한다.

이렇게 변하는 않는 것들 사이에서, 나는 놀랍게도 무언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는 그런 뻔하고 틀에 박힌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사회에 나가는 과정에서, 잃게 되는 학생 때의 마음가짐,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장 닮아 보이는 것이 어쩌면 하나도 닮은 게 아닐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이다. 한 여름 땡볕 속에서도 분명 그늘진 곳은 존재한다. 불현듯, 그늘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짧은 영상이지만 생각은 계속 이어진다. 4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호흡하는 공기는 같으며, 허우 샤오시엔의 작품이 영화 속 영화로 들어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쇼팽의 피아노곡 덕분에 은근히 <하나와 앨리스> 느낌도 난다. 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날에, 곱씹어 보기 좋은 영화가 아닌가 싶다. 물론 내 마음이 다시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제18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최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