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달팽이
The Observer's Shell
2026 | 극 | 22분 58초 | 국내경쟁
재개발로 삶의 기반을 잃고 떠돌던 청년 희탁(남/28)은 가게 철거로 같은 위기에 놓인 현상소 주인 만수(남/70)를 찾아간다. 희탁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사라질 것들 앞에 무력감에 빠진다. 만수는 그런 희탁에게 바라보는 것들이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조언을 건네고, 만수와의 교류를 통해 희탁은 자신의 카메라 렌즈가 아닌 내면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결국 희탁은 ‘사라지는 풍경’이 아닌, 만수와 함께했던 ‘존재의 순간’에 초점을 맞춘 사진을 찍는다. 그것은 두 세대가 교류를 통해 사라짐이 아닌, 기억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 프로그램 노트
충무로에서 을지로 사이의 인쇄 골목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충무로와 을지로가 영화와 출판이라는 기록의 매체에 대해 갖는 상징성이 무색하게, 오래된 인쇄소와 현상소가 도시 바깥으로 밀려난 자리엔 오피스텔과 상가가 자리할 예정이다. 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밀려난 20대 청년 희탁은 철거가 예정된 현상소 주인이자 70대 노인인 민수의 집에 머물게 된다. 한 번 자리를 잃고 밀려난 주인공은 머지않아 밀려날 곳에 기거한다. 필름 카메라로 사라질 가게와 골목들을 찍는 희탁과 그것들을 인화해 주는 민수, 풍경이 찍힌 필름은 도시를 기록한 물건이 되지만 이들의 관계를 담아내진 못한다. 골목 사이사이 스며들어 있을 기억과 관계들은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발견될 것이다. 똑같은 충무로의 골목 풍경 사진을 본다 해도 말이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기억과 관계가 중첩된 순간을 필름에 담아내는 것, <슈뢰딩거의 달팽이>는 어딘가 눅눅한 느낌마저 드는 충무로 상가 아랫길의 분위기를 담아내며 희탁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향해 간다.
제27회 대구단편영화제 예심위원 박동수